939일 중 11일째

우리 이름을 내자

창세기 11장 · 마태복음 5:37-48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GEN.11.4

1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6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10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30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32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배경

홍수는 물러갔고 노아와 맺은 언약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10장은 이미 여러 민족이 각기 자기 언어를 따라 온 땅으로 퍼져 나갔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섭니다.

틴데일 주석은 11장 1-9절을 앞으로 돌아간 장면으로 봅니다. 10장의 흩어짐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라는 것입니다. 순서가 뒤집힌 것은 연대가 헷갈려서가 아니라, 그렇게 놓아야 말하려는 바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무대는 시날, 곧 메소포타미아 남쪽입니다. 훗날 니므롯의 영토가 되고, 더 뒤에는 바벨론이 될 땅입니다. 탑 이야기가 끝나면 셈에서 데라까지 이름이 이어지고, 마침내 한 가족이 우르를 떠납니다. 늙은 아버지와 아들 아브람, 조카 롯,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래입니다. 12장이 바로 다음 장입니다.

본문 풀이

탑을 쌓는 사람들은 두 번 말하는데, 두 번 다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자, 성과 대를 쌓아…" 틴데일 주석은 그 밑에 깔린 현실적인 사정을 짚어 줍니다. 가나안에는 돌이 흔했지만 메소포타미아에는 귀했고, 그래서 그곳에서 벽돌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천연 방수 아스팔트인 역청이 회를 대신했습니다. 강가 평야에서 실제로 벌어진 공사이고, 두 지역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쓴 기록입니다.

그 탑은 아마도 지구라트, 곧 신전으로 쓰인 탑이었을 것입니다. 바벨론 문화에서 이런 탑은 신들이 땅으로 내려오는 거룩한 산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야심은 건축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야심입니다. 그리고 본문이 밝히는 동기는 두 가지입니다.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 그리고 흩어지지 말자는 것. 명성과 안전을, 자기 손으로 쌓아 올려 확보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5절에 이릅니다. 이야기가 꺾이는 자리이면서, 조용히 웃음이 배어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늘에 닿겠다던 그 탑이 하나님 계신 곳에서 보기에는 어찌나 보잘것없는지, 보시려면 내려오셔야 할 지경입니다. 클라크는 이 구절을 재판하는 이들에게 주는 교훈으로 읽은 유대인들의 해석을 전합니다. 판결하기 전에 먼저 직접 살피라는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내려오신다는 그 한마디가 이 일의 크기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쓰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십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탑을 허무시지는 않습니다. 말을 혼잡하게 하시니 공사가 그냥 멈춥니다. 틴데일 주석은 그들이 두려워했던 두 가지가 결국 다 닥쳤다고 지적합니다. 이름도 남지 않았고, 온 땅에 흩어졌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신들의 문이라고 알아들었던 그 이름이, 여기서는 혼란을 뜻하는 말장난이 됩니다.

이제 족보가 좁아집니다. 셈의 계보가 데라에게로 이어지고, 데라의 가족이 우르를 떠납니다. 여기서 두 가지가 무겁게 걸립니다. 첫째, 여호수아 24장 2절은 이 조상들이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틴데일 주석은 데라와 밀가의 이름이 모두 달 숭배와 연결되며, 그들이 자리 잡은 하란이 달 숭배의 중심지였다고 덧붙입니다. 둘째,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벨의 세상에서 하나님이 골라내신 남은 자는, 앞날이 없는 우상 숭배자의 집안이었습니다.

연대에 관해서는 자료들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클라크는 히브리어 본문과 사마리아 오경, 칠십인역, 요세푸스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길게 다루면서, 칠십인역에 한 세대가 더 들어가 있는 것까지 짚고, 숫자 문제는 정말로 풀기 어렵다고 결론짓습니다. 틴데일 주석은 히브리 족보가 반드시 모든 세대를 다 적지는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이런 불확실함은 매끄럽게 덮기보다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결

바벨의 문제는 사람의 노력으로 되돌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답하신 것입니다. 오순절에 언어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언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로 가득 찼습니다. 틴데일 주석은 그날을 이 흩어짐이 상징적으로 뒤집힌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더 깊은 대답은 두 이름의 모양에 있습니다. 탑을 쌓던 이들은 이름을 움켜쥐려다 성읍마저 잃었습니다. 아브람은 모든 것을 두고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았고, 12장에서 창대한 이름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흐름을 끝까지 밀고 가십니다. 자기 이름을 내지 않으셨고, 로마의 처형대까지 낮아지셨으며,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바벨이 쌓아 올리려 했던 것을, 하나님은 거저 주십니다.

오늘의 한 가지

이번 주가 가기 전에, 정말 쓸모 있는 일 하나를 하되 그것이 내가 한 일임을 아무도 모르도록 일부러 덮으십시오.

그들은 이름을 원했습니다. 이름을 원하는 것은 사소한 욕심이 아닙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셈에 들고, 잊히지 않는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절의 두 번째 두려움이 첫 번째 옆에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흩어진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훨씬 평범한 재료로 탑을 쌓습니다. 윗사람을 참조로 넣어 보낸 메일. 공이 내 쪽으로 떨어지도록 다듬어 놓은 말투. 누가 알아봐 주었는지 속으로 조용히 세어 보는 습관. 정직하게 이름을 붙여 보십시오.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견고함을 내 평판에게 달라고 조르는 중입니다. 그러니 그 일을 보이지 않게 하십시오. 아무도 기록해 두지 않은 문제를 조용히 고쳐 놓으십시오. 동료의 몫을 메워 주고 감사는 그 사람이 받게 두십시오. 그리고 그 일에서 얻던 만족 가운데 얼마만큼이 남이 봐 주는 데서 왔는지 살펴보십시오.

기도

주님, 저는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고, 그러려고 작은 탑들을 쌓습니다. 주님은 바벨에 내려와 보신 뒤에, 우상을 섬기던 집안, 아이도 없던 그 가정을 부르셨습니다. 이름을 제 손으로 만들어 내지 않고 주님께로부터 받게 하시고, 오늘 하루 봐 주는 사람 없이도 일하게 하소서. 아멘.

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보조 본문에 관하여

예수님은 율법이 허락했던 보복을 제자들에게 금하십니다. 틴데일 주석은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는 일이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실제로 겪던 굴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 굴욕이 여기서는 기쁘게 섬길 기회로 바뀝니다. 근거는 45절에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불의한 자에게도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리시며, 자녀는 아버지를 닮습니다. 바벨의 건축자들은 자기가 쌓아 올린 것으로 이름을 얻으려 했지만, 제자들은 갚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함으로 자기가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드러냅니다.

원어 묵상

바벨 (בָּבֶל) — 바벨론, "혼란"

두 주석이 이 이름을 서로 다른 쪽에서 봅니다. 틴데일 주석은 바벨론 사람들 자신은 이 도시 이름을 신들이 머무는 곳, 신들의 문으로 알아들었다고 전하면서, 9절을 그 도시의 영적 혼란을 드러내는 의도적인 말장난으로 읽습니다. 클라크는 섞다, 뒤엉키게 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어근과 이 이름을 연결합니다. 어느 쪽이든 기록자는 중립적인 어원 풀이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위풍당당했던 도시의 이름을 뒤죽박죽이라는 뜻으로 들리게 놓아둔 것입니다.

교리문답

WSC 1 · WSC 46 · WCF 5.1

관련 구절

ACT.2.5-13 · ZEP.3.9 · GEN.12.1-3 · JOS.24.2 · ACT.7.2-4 · PHP.2.9-11

출처

tyndale:GEN.11 (CC BY-SA 4.0) · adam-clarke:GEN.11 (Public Domain) · tyndale:MAT.5 (CC BY-SA 4.0) · wsc:1 (Public Domain) · wsc:46 (Public Domain) · wcf:5.1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