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일 중 10일째
일흔 민족
창세기 10장 · 마태복음 5:25-36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백성이 나뉘었더라
GEN.10.32
창세기 10장
배경
홍수가 끝났습니다. 노아의 가족은 방주에서 나와 무지개 언약을 받았고, 그러고는 장막 안에서 부끄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9장은 노아의 아들들에게 내린 축복과 저주로 끝나고, 10장은 그 아들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창세기를 이루는 "족보" 단락 가운데 다섯째입니다. 읽어 보면 지도 같습니다. 야벳의 자손은 북과 서로, 함의 자손은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으로, 셈의 자손은 동으로 퍼져 나갑니다.
이스라엘이 이 본문을 처음 들은 것은 애굽에서 사백 년을 보낸 뒤였고, 그들 앞에는 가나안이 있었습니다. 여기 적힌 이름은 거의 다 그들이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교역 상대였고, 점령자였고, 국경이었고, 원수였습니다. 족보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걸어 들어갈 세계의 지도입니다.
본문 풀이
고대 독자처럼 읽으면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은, 여기 나오는 이름들이 대개 개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담 클라크는 "아들들"이라 불리는 이름 가운데 상당수가 문법적으로 복수형이라고 지적합니다. 미스라임은 쌍수 형태이고, 룻딤과 납두힘, 가슬루힘, 갑도림 같은 이름들은 사람이 아니라 민족입니다. 창세기는 조상의 이름으로, 때로는 지역의 이름으로 민족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15-18절에 줄지어 나오는 가나안의 이름들은 이스라엘이 요단 건너편에서 만날 부족들의 이름 그대로입니다.
두 번째로 놀라운 것은 숫자입니다. 틴데일 주석은 이름을 일흔 개로 셉니다. 일곱에 열을 곱한 수, 완전함을 뜻하는 수입니다. 야곱의 집안도 일흔 명으로 애굽에 내려갔습니다(창세기 46:27). 일흔 명의 한 가족이, 일흔 민족의 세계를 복되게 하라고 부름받습니다. 이 장은 그 말을 소리 내어 하지 않습니다. 알아채는 몫은 읽는 사람에게 남겨 둡니다.
세 번째는 순서입니다. 셈은 1절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지만 가장 나중에 다루어집니다. 이야기가 그를 향해 좁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에벨로, 벨렉으로, 아브람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 민족 목록은 바벨 이야기보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실은 바벨이 이 목록을 만들어 낸 사건인데도 그렇습니다. 5절과 20절과 31절은 이미 언어가 갈라졌다고 말하는데, 11장은 아직 그 까닭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틴데일은 이 뒤바뀐 배치를 의도된 것으로 읽습니다. 민족들이 퍼져 나간 일이 먼저 9장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제시되고, 그다음에야 11장의 심판으로 제시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목록이 여섯 절 동안 끊기고 니므롯 이야기가 끼어듭니다(10:8-12). 그의 나라는 바벨에서 시작해 니느웨까지 이르렀습니다. 훗날 이스라엘과 유다를 사로잡아 갈 바로 그 두 세력입니다. 니므롯이 악인이었는지는 설교에서 흔히 말하는 것만큼 분명하지 않습니다. 클라크는 그가 "아주 나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며, 그 이름을 "그가 반역하였다"는 뜻의 동사 마라드와 연결하고, 그를 반역자이며 무고한 사람을 죽인 자로 그리는 고대 유대 의역들을 인용합니다. 그러면서도 클라크는 자기 견해에 맞서는 반론을 지우지 않습니다. 그런 비난의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원문에도 역본에도 없는 말이 아니냐고 되묻는 리처드슨의 말을 함께 실어 둡니다. 히브리어 본문이 말하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그는 용사였고, 여호와 앞에서 그러했고, 성읍들을 세웠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결
민족의 목록은 무심한 기록이 아닙니다. 신명기 32:8과 아덴에서 말한 바울(사도행전 17:26)은 이 민족들의 연대와 경계를 하나님이 친히 정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10장은 씨가 뿌려지기 전에 그려 놓은 밭의 지도입니다. 두 장 뒤에서 하나님은 이 붐비는 세상에서 한 사람을 불러내시고, 그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창세기 12:3; 18:18). 그 사이에 놓인 모든 일, 곧 이스라엘과 포로 생활과 구유와 십자가는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키시는 과정입니다. 여기 적힌 민족들은 뒤에 깔린 배경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부름받은 이유가 바로 그들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그들입니다.
오늘의 한 가지
이름 대신 국적이나 범주로 조용히 분류해 두었던 한 사람의 이름을 배워서, 그 이름으로 불러 보십시오.
이 장은 이스라엘이 그냥 "저들"이라고 묶어 부를 이유가 충분했던 민족들의 이름을 서른두 절에 걸쳐 하나하나 적어 놓습니다. 애굽, 앗수르, 바벨, 가나안의 부족들입니다. 그런데도 창세기는 이름을 부르고, 그들이 같은 방주에서 나온 같은 아버지의 자손임을 짚습니다. 감상이 아닙니다. 모두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해 보십시오. 우리 층을 청소하시는 분의 이름을 한 번도 여쭤본 적이 없다면 여쭤 보십시오. 억양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기사님, 이른 아침 화상 회의 저편에 앉아 있는데 이름을 정확히 부르지 않고 대충 넘기던 동료. 물어보고, 외우고, 제대로 부르십시오. 삼십 초면 됩니다. 그 삼십 초가, 창세기 10장이 이미 거부한 마음의 습관을 조용히 거부합니다.
기도
아버지, 주님은 모든 민족의 때와 경계를 정하셨고, 그 가운데 하나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알아 가는 수고를 피하려고 제가 써 온 범주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오늘 만나는 얼굴마다 그 뒤에 있는 방주와 약속을 보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그 복의 한 부분이 되게 하소서. 아멘.
보조 본문 — 마태복음 5:25-36
보조 본문에 관하여
예수님은 계속해서 율법의 표면을 지나 더 깊은 곳으로 밀고 들어가십니다. 살인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풀지 않은 원한까지, 간음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의 정욕까지, 합법적인 이혼이 아니라 언약에 충실한 결혼까지, 맹세를 지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맹세가 필요 없을 만큼 정직한 말까지 다루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뒤의 두 가지를 모두 진지하게 받습니다. 합당한 맹세를 다루는 제22장은 바로 이 구절들을 인용하고, 결혼과 이혼을 다루는 제24장은 마태복음 19장에서 결혼에 대해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같은 가르침을 둡니다. 여기서 의는 서류가 아니라 마음에 닿습니다.
원어 묵상
벨렉 (פֶּלֶג) — 나뉨
25절이 그 이름의 뜻을 밝혀 줍니다. 그의 때에 세상이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틴데일은 이 말을 바벨에서 언어별로 흩어진 일(11:1-9)을 미리 가리키는 것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벨렉의 형제 욕단은 그 이야기의 저편에 놓이고, 벨렉의 계보는 아브람에게로 이어집니다. 클라크는 이것을 육지가 물리적으로 갈라진 일로 본 사람들도 있다고 적어 둡니다. 본문은 이 문제를 결론짓지 않으며, 우리도 결론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이 분명히 하는 것은 나뉨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약속이 그 나뉨을 통과하여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교리문답
WSC 11 · WCF 5.1 · WCF 22.1
관련 구절
DEU.32.8 · ACT.17.26 · GEN.12.3 · GEN.18.18 · GEN.46.27 · AMO.9.7
출처
tyndale:GEN.10 (CC BY-SA 4.0) · tyndale:MAT.5 (CC BY-SA 4.0) · adam-clarke:GEN.10 (Public Domain) · wcf:5.1 (Public Domain) · wcf:22.1 (Public Domain) · wcf:24 (Public Domain) · wsc:11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