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일 중 9일째

구름 속에 두신 무지개

창세기 9장 · 마태복음 5:13-24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GEN.9.6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3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5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7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8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9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14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18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19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지내었고 29향년이 구백오십 세에 죽었더라

배경

비가 그쳤습니다. 방주는 비었고, 노아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8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할지라도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말씀하셨습니다. 9장은 그 말씀을 이제 소리 내어 하시는 자리입니다. 듣는 사람은 노아와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입니다. 그때 인류는 이 여덟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이 글을 읽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이름들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함에게서 가나안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은 함의 땅인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의 땅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장은 그들에게 그저 배경 설명이 아닙니다. 그들이 몸담고 사는 세계의 헌장입니다. 약속 아래 놓인 세계, 고기를 먹는 것이 허락되고 폭력이 제어되는 세계입니다. 동시에 그들이 이제 막 들어가려는 그 땅의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본문 풀이

홍수 뒤에 하나님이 처음 하신 말씀은 복으로 시작해서 복으로 끝납니다(1절, 7절). 그 사이에 씻긴 세계에서 살아갈 조건이 정해집니다. 아담에게 주셨던 명령이 다시 주어집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노아는 다시 사람으로 채워져야 할 세계의 아담으로 서 있는 셈입니다. 달라진 것이 셋 있습니다. 짐승들이 이제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고기를 먹는 것이 허락되어 창세기 1장 29절의 곡식과 열매 위에 더해집니다. 그리고 피는 반드시 빼내야 합니다. 피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한은 훗날 모세의 율법에 그대로 들어가고 속죄와 묶입니다(레 17:11; 히 9:22).

그리고 가장 어려운 구절이 나옵니다. 포악이 땅에 가득했던 것이 홍수를 불러온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6:11, 13). 이제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일에 보응하는 정의를 세우십니다. 그 근거로 무엇을 대시는지 눈여겨보십시오. 살인이 사회를 흔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형벌이 무거운 것은 무너뜨린 대상이 그만큼 무겁기 때문입니다. 틴데일 주석은 이 원리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짚어 줍니다. 사사로운 보복이 아니라(롬 12:17-19),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가 집행하는 정의입니다(롬 13:1-7).

두 번째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묶으십니다. 그 범위는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새와 가축과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물, 그리고 땅 자체까지 들어갑니다. 조건은 붙지 않습니다. 노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표는 구름 속에 걸린 활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장은 좋지 않게 끝납니다. 새 아담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은 채 누워 있습니다. 한 아들은 그것을 보고 덮는 대신 밖에 나가 알립니다.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들어가 얼굴을 돌린 채 덮습니다. 틴데일 주석은 이 장면을 홍수가 홍수를 불러온 그것까지 씻어 내지는 못했다는 증거로 읽습니다. 아담 클라크는 노아가 포도주의 작용을 몰랐을 수 있다고 보면서 책임을 온전히 함에게 돌립니다. 주석가들의 견해가 갈리고, 본문도 이를 매듭짓지 않습니다. 본문이 분명히 하는 것은 저주가 향한 대상입니다. 가나안, 곧 훗날 이스라엘이 몰아내게 될 민족입니다. 틴데일은 노아가 함의 행동을 그 혈통을 도덕적으로 대표하는 일로 내다본 것이라고 읽습니다. 클라크는 거기서 더 나아갑니다. 그 저주가 마땅했다고 변호하고, 그 혈통이 영원한 종살이를 선고받았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창세기의 어느 본문보다도 이 본문에서는 그를 경계하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수백 년 동안 이 구절을 인종에 근거한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고백하던 이들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경제 구조를 본문에 되읽어 넣은 것인데, 본문은 그 무게를 감당해 주지 않습니다. 저주는 한 민족을 지목할 뿐 피부색을 지목하지 않습니다. 살빛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이 오독은 정보가 모자라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본문이 어떤 말을 해 주기를 바랐던 사람들에게서 생긴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바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결

이 장에는 두 가지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피는 생명이며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버리실 이유가 충분한 세계에 스스로를 묶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십자가에서 만납니다. 피에 관한 제한은 하나님이 죄를 속하기 위해 친히 마련하실 피를 가리킵니다(레 17:11; 히 9:22). 또 6절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의 피를 흘린 자에게 하나님이 그 값을 찾으시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형상을 한 번도 일그러뜨리지 않으신 한 사람이 사람들의 손에 피를 흘리셨고, 하나님은 정말로 그 값을 찾으셨습니다. 다만 우리에게서 받아 내지 않으시고 그 피를 대속물로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맺어지는 언약은 한쪽이 홀로 지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갈보리에서 우리는 그 기억이 그분께 무엇을 치르게 했는지 보게 됩니다.

오늘의 한 가지

이번 주일이 오기 전에, 속으로 '답 없는 사람', '상대 못 할 사람', '가망 없는 사람'이라고 딱지를 붙여 둔 그 한 사람을 찾아가, 관계를 고치려는 정직한 한마디를 건네십시오.

창세기 9장은 제육계명을 하나님의 형상 위에 세웁니다. 예수님은 그 계명을 행동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밑에 깔린 멸시까지 끌고 가십니다. 멸시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 보십시오. 속으로 붙이는 딱지는 이 이야기에서 누가 상식적인 사람인지를 단번에 정리해 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단한 도덕적 근거처럼 느껴집니다. 아무의 서명도 필요 없이 내가 나에게 내리는 판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의를 값싸게 손수 지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를 가라앉히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가라고 하십니다. 어머니 간병 문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형제. 밤마다 배우자 앞에서 흉을 보게 되는 직장 동료. 이번 주에, 나를 변호하지 않는 한 문장을 건네십시오.

기도

주님, 주님은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시고, 떠나실 이유가 충분한 세계에 스스로를 묶으셨습니다. 제가 이미 마음에서 지워 버린 사람들에게서 주님의 형상을 보게 하시고, 주님께 무엇을 들고 나아가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가게 하소서. 주님이 저를 견디어 주신 것처럼 저도 그들을 견디게 하소서. 아멘.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보조 본문에 관하여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율법이 처음부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창세기 9장은 칼로 살인을 제어합니다. 마태복음 5장은 살인을 거슬러 올라가 '라가'라는 말에까지 이릅니다. 틴데일 주석은 이 말을 '머리가 빈 놈' 정도로 풀이합니다. 둘은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함부로 값을 깎아내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놓으신 처방은 더 무거운 형벌이 아니라 걸어가는 일입니다. 예물을 두고, 가서, 화목하고, 그런 다음 돌아오는 것입니다.

원어 묵상

케쉐트 (קֶשֶׁת) — 활, 무지개

히브리어는 활을 쏘는 무기와 구름에 걸린 반원을 한 낱말로 부릅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하나님은 심판의 화살을 쏘시는 용사로 그려지기도 합니다(신 32:42; 시 7:12; 합 3:9-11). 그래서 어떤 이들은 여기서 용사이신 하나님이 활을 걸어 두시는 장면을 듣는다고 틴데일 주석은 전합니다. 다만 본문 자체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담 클라크는 영적인 해석을 모두 사양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내가 내 활을 구름 속에 두었다'로 읽히며, 이는 해와 비 속에 이미 있던 현상에 이제 뜻이 부여된 것이라고 봅니다.

교리문답

WSC 68 · WSC 69 · WCF 7.1

관련 구절

GEN.1.26-28 · LEV.17.11 · ROM.13.1-7 · ROM.12.17-19 · 2PE.3.4-13 · MAT.5.21-24

출처

tyndale:GEN.9 (CC BY-SA 4.0) · adam-clarke:GEN.9 (Public Domain) · tyndale:MAT.5 (CC BY-SA 4.0) · wsc:68 (Public Domain) · wsc:69 (Public Domain) · wcf:7.1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