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일 중 9일째
구름 속에 두신 무지개
창세기 9장 · 마태복음 5:13-24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GEN.9.6
창세기 9장
배경
비가 그쳤습니다. 방주는 비었고, 노아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8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할지라도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말씀하셨습니다. 9장은 그 말씀을 이제 소리 내어 하시는 자리입니다. 듣는 사람은 노아와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입니다. 그때 인류는 이 여덟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이 글을 읽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이름들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함에게서 가나안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은 함의 땅인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의 땅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장은 그들에게 그저 배경 설명이 아닙니다. 그들이 몸담고 사는 세계의 헌장입니다. 약속 아래 놓인 세계, 고기를 먹는 것이 허락되고 폭력이 제어되는 세계입니다. 동시에 그들이 이제 막 들어가려는 그 땅의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본문 풀이
홍수 뒤에 하나님이 처음 하신 말씀은 복으로 시작해서 복으로 끝납니다(1절, 7절). 그 사이에 씻긴 세계에서 살아갈 조건이 정해집니다. 아담에게 주셨던 명령이 다시 주어집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노아는 다시 사람으로 채워져야 할 세계의 아담으로 서 있는 셈입니다. 달라진 것이 셋 있습니다. 짐승들이 이제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고기를 먹는 것이 허락되어 창세기 1장 29절의 곡식과 열매 위에 더해집니다. 그리고 피는 반드시 빼내야 합니다. 피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한은 훗날 모세의 율법에 그대로 들어가고 속죄와 묶입니다(레 17:11; 히 9:22).
그리고 가장 어려운 구절이 나옵니다. 포악이 땅에 가득했던 것이 홍수를 불러온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6:11, 13). 이제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일에 보응하는 정의를 세우십니다. 그 근거로 무엇을 대시는지 눈여겨보십시오. 살인이 사회를 흔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형벌이 무거운 것은 무너뜨린 대상이 그만큼 무겁기 때문입니다. 틴데일 주석은 이 원리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짚어 줍니다. 사사로운 보복이 아니라(롬 12:17-19),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가 집행하는 정의입니다(롬 13:1-7).
두 번째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묶으십니다. 그 범위는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새와 가축과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물, 그리고 땅 자체까지 들어갑니다. 조건은 붙지 않습니다. 노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표는 구름 속에 걸린 활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장은 좋지 않게 끝납니다. 새 아담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은 채 누워 있습니다. 한 아들은 그것을 보고 덮는 대신 밖에 나가 알립니다.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들어가 얼굴을 돌린 채 덮습니다. 틴데일 주석은 이 장면을 홍수가 홍수를 불러온 그것까지 씻어 내지는 못했다는 증거로 읽습니다. 아담 클라크는 노아가 포도주의 작용을 몰랐을 수 있다고 보면서 책임을 온전히 함에게 돌립니다. 주석가들의 견해가 갈리고, 본문도 이를 매듭짓지 않습니다. 본문이 분명히 하는 것은 저주가 향한 대상입니다. 가나안, 곧 훗날 이스라엘이 몰아내게 될 민족입니다. 틴데일은 노아가 함의 행동을 그 혈통을 도덕적으로 대표하는 일로 내다본 것이라고 읽습니다. 클라크는 거기서 더 나아갑니다. 그 저주가 마땅했다고 변호하고, 그 혈통이 영원한 종살이를 선고받았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창세기의 어느 본문보다도 이 본문에서는 그를 경계하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수백 년 동안 이 구절을 인종에 근거한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고백하던 이들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경제 구조를 본문에 되읽어 넣은 것인데, 본문은 그 무게를 감당해 주지 않습니다. 저주는 한 민족을 지목할 뿐 피부색을 지목하지 않습니다. 살빛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이 오독은 정보가 모자라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본문이 어떤 말을 해 주기를 바랐던 사람들에게서 생긴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바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결
이 장에는 두 가지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피는 생명이며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버리실 이유가 충분한 세계에 스스로를 묶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십자가에서 만납니다. 피에 관한 제한은 하나님이 죄를 속하기 위해 친히 마련하실 피를 가리킵니다(레 17:11; 히 9:22). 또 6절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의 피를 흘린 자에게 하나님이 그 값을 찾으시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형상을 한 번도 일그러뜨리지 않으신 한 사람이 사람들의 손에 피를 흘리셨고, 하나님은 정말로 그 값을 찾으셨습니다. 다만 우리에게서 받아 내지 않으시고 그 피를 대속물로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맺어지는 언약은 한쪽이 홀로 지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갈보리에서 우리는 그 기억이 그분께 무엇을 치르게 했는지 보게 됩니다.
오늘의 한 가지
이번 주일이 오기 전에, 속으로 '답 없는 사람', '상대 못 할 사람', '가망 없는 사람'이라고 딱지를 붙여 둔 그 한 사람을 찾아가, 관계를 고치려는 정직한 한마디를 건네십시오.
창세기 9장은 제육계명을 하나님의 형상 위에 세웁니다. 예수님은 그 계명을 행동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밑에 깔린 멸시까지 끌고 가십니다. 멸시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 보십시오. 속으로 붙이는 딱지는 이 이야기에서 누가 상식적인 사람인지를 단번에 정리해 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단한 도덕적 근거처럼 느껴집니다. 아무의 서명도 필요 없이 내가 나에게 내리는 판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의를 값싸게 손수 지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를 가라앉히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가라고 하십니다. 어머니 간병 문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형제. 밤마다 배우자 앞에서 흉을 보게 되는 직장 동료. 이번 주에, 나를 변호하지 않는 한 문장을 건네십시오.
기도
주님, 주님은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시고, 떠나실 이유가 충분한 세계에 스스로를 묶으셨습니다. 제가 이미 마음에서 지워 버린 사람들에게서 주님의 형상을 보게 하시고, 주님께 무엇을 들고 나아가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가게 하소서. 주님이 저를 견디어 주신 것처럼 저도 그들을 견디게 하소서. 아멘.
보조 본문 — 마태복음 5:13-24
보조 본문에 관하여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율법이 처음부터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창세기 9장은 칼로 살인을 제어합니다. 마태복음 5장은 살인을 거슬러 올라가 '라가'라는 말에까지 이릅니다. 틴데일 주석은 이 말을 '머리가 빈 놈' 정도로 풀이합니다. 둘은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함부로 값을 깎아내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놓으신 처방은 더 무거운 형벌이 아니라 걸어가는 일입니다. 예물을 두고, 가서, 화목하고, 그런 다음 돌아오는 것입니다.
원어 묵상
케쉐트 (קֶשֶׁת) — 활, 무지개
히브리어는 활을 쏘는 무기와 구름에 걸린 반원을 한 낱말로 부릅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하나님은 심판의 화살을 쏘시는 용사로 그려지기도 합니다(신 32:42; 시 7:12; 합 3:9-11). 그래서 어떤 이들은 여기서 용사이신 하나님이 활을 걸어 두시는 장면을 듣는다고 틴데일 주석은 전합니다. 다만 본문 자체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담 클라크는 영적인 해석을 모두 사양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내가 내 활을 구름 속에 두었다'로 읽히며, 이는 해와 비 속에 이미 있던 현상에 이제 뜻이 부여된 것이라고 봅니다.
교리문답
WSC 68 · WSC 69 · WCF 7.1
관련 구절
GEN.1.26-28 · LEV.17.11 · ROM.13.1-7 · ROM.12.17-19 · 2PE.3.4-13 · MAT.5.21-24
출처
tyndale:GEN.9 (CC BY-SA 4.0) · adam-clarke:GEN.9 (Public Domain) · tyndale:MAT.5 (CC BY-SA 4.0) · wsc:68 (Public Domain) · wsc:69 (Public Domain) · wcf:7.1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