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일 중 8일째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창세기 8장 · 마태복음 5:1-12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GEN.8.21
창세기 8장
배경
7장은 세상을 물 아래 둔 채로 끝납니다. 이야기 자체도 물에 잠긴 것 같습니다. 대화도 없고, 움직임도 없습니다. 물이 불어나는 일만 계속됩니다.
노아는 육백 세입니다.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과 짐승들과 함께 배 안에 갇혔고, 이 일이 언제 끝날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7장 어디에도 그가 무엇을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저 떠 있을 뿐입니다.
8장은 이야기가 방향을 바꾸는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방향을 바꾸는 것은 노아가 나서서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한 문장입니다. 그 뒤로는 대부분 날짜와 기다림입니다. 물이 조금씩 줄고, 산봉우리가 드러나고, 새를 내보냈다가 다시 받아들이고, 덮개를 걷고, 한 가족이 두 번이나 확인한 뒤에야 땅에 발을 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단이 나옵니다. 성경에 처음으로 언급되는 제단입니다.
본문 풀이
개역한글은 이 대목을 "권념하사"로 옮겼습니다. 홍수 이야기 전체가 이 한 문장에서 돌아섭니다. 하나님이 잠시 잊고 계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틴데일 주석은 '기억한다'가 언약의 언어라고 지적합니다. 약속하신 바에 신실하게 행동하신다는 뜻입니다(6:18; 9:15-16; 출 2:24 참조). 이 동사는 하나님이 달라지셨다는 표시가 아니라, 이야기가 방향을 바꾸는 지점을 알리는 표시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장면은 창세기 1장처럼 들리도록 쓰였습니다. 하나님이 바람을 보내십니다. 1장 2절에서 '영'으로 옮긴 바로 그 히브리어입니다. 물은 셋째 날에 그랬듯이 물러갑니다(1:9). 14절에서 마른 땅을 가리키는 낱말은, 성경이 바다와 육지를 함께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1:9-10; 출 14:22; 시 95:5). 그리고 짐승들이 배에서 나와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첫 창조의 복이 그대로 다시 선포됩니다. 처음 이 글을 들은 이들은 세계가 두 번째로 지어지는 장면을 보았을 것입니다.
세부 묘사는 서두르지 않고, 뜻밖에도 실용적입니다. 까마귀는 죽은 것을 먹는 부정한 새입니다. 클라크는 히브리어 본문이 까마귀가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고 말한다는 점을 짚습니다. 물 위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었고, 배 안으로 들이지 않아도 배 위에 앉아 쉴 수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풀을 먹습니다. 감람나무는 키가 크지 않으니, 물어 온 잎사귀 하나가 물이 얼마나 내려갔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노아는 환상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꼼꼼히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단이 나오고, 모든 것을 흔들어 놓는 한 문장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십니다. 향기를 맡으셨다는 표현은 사람의 방식을 빌린 말이고, 틴데일 주석은 신들이 바쳐진 제물을 먹는다는 고대 근동의 통념이 여기에는 눈에 띄게 빠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으시겠다며 하나님이 대시는 이유를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6장 5절과 똑같은 판정입니다. 그 판정이 이제는 심판의 근거가 아니라 긍휼의 근거가 됩니다. (클라크는 이 접속사를 양보로 읽어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악할지라도"로 풀이합니다. 그러면 이 구절은 마음 때문에 주어진 약속이 아니라 그 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지는 약속이 됩니다. 대부분의 번역은 여기서처럼 이유로 읽습니다. 그의 주석을 찾아볼 생각이라면 이 차이를 알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8장 21절의 "그 중심에 이르시되"와 6장 6절의 "마음에 근심하시고"는 히브리어로 같은 표현입니다. 개역한글이 한쪽은 중심으로, 다른 쪽은 마음으로 옮겼을 뿐입니다. 본문은 이 되울림을 일부러 놓아두었습니다.
그러니 정직한 물음 하나가 남습니다. 마음이 그대로인 채 방주에서 내렸다면, 홍수는 대체 무엇을 이룬 것입니까? 홍수는 그 세대의 폭력을 그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새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옛 저주가 걷힌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만 거기에 더 얹지 않으시겠다고, 그리고 어그러진 세상 위에 계절을 끝까지 한결같이 돌리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와의 연결
21절의 약속은 두 가지 위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결심과 한 제사입니다. 나아진 사람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합니다. 훗날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드리셨다고 말하는데, 클라크는 그 헬라어 표현이 칠십인역이 바로 이 구절에서 쓴 말과 같다고 지적합니다. 노아의 제단이 가리키기만 할 수 있었던 것을 십자가가 이룹니다. 다만 홍수가 하지 못한 일과 십자가가 하는 일을 눈여겨보십시오. 홍수는 악을 바깥에서 눌렀을 뿐입니다. 그리스도는 새 마음을 주십니다. 변하지 않은 마음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그 참으심이 곧 치료가 도착하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한 가지
오늘,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리라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그 상황의 변화를 말로 꺼내 놓고, 정작 고쳐지기를 바라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 곧바로 가져가십시오.
홍수는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새 출발입니다. 모든 것이 지워졌고, 물이 빠졌고, 한 가족이 깨끗한 땅을 밟습니다. 그런데 21절은 방주에서 내린 마음이 방주에 올랐던 그 마음과 같다고 말합니다. 본문을 비관적으로 읽은 결과가 아니라 본문이 스스로 내리는 판정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새 출발이 해 주기를 조용히 기대합니다. 봄에 옮길 직장, 이사, 아이가 조금 더 크는 해, 새해 첫날에 세운 계획 같은 것들입니다. 새 출발은 나를 너그럽고 성실하고 원망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니 소리 내어 말해 보십시오. "나는 이것이 나를 고쳐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오늘, 달라지지 않은 세상 위에서도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께 그대로 가져가십시오.
기도
하나님, 노아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에 주님은 그를 기억하셨습니다. 마음이 달라지지 않은 세상 위에도 계절을 돌리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형편이 바뀌면 제가 새로워질 줄 알고 기다려 왔습니다. 더 깊은 일은 주님이 친히 해 주시고, 그때까지 저를 붙들어 주소서. 아멘.
보조 본문 — 마태복음 5:1-12
보조 본문에 관하여
창세기 8장은 계속 붙들어 주시는 땅에 대한 약속으로 끝나고,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그 땅을 기업으로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시편 37편 11절을 거의 그대로 옮기신 말씀입니다. 팔복이 그리는 사람은 하나같이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주린 사람입니다. 틴데일 주석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배부를 것임이요" 같은 수동형이 하나님이 하실 일을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합니다. 12절의 상은 잘 견딘 대가로 받는 삯이 아닙니다. 노아의 제단 위에 주어진 약속처럼, 거저 주어지는 복입니다.
원어 묵상
자카르 (זָכַר) — 기억하다
잊었던 것을 되찾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고 말할 때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대로 행동하신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과 레위기 26장 42절에서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실 때, 또 창세기 9장 15-16절에서 무지개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하실 때 같은 동사가 쓰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8장 1절은 노아의 사정이 마침내 하나님의 눈에 띄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언약의 상대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이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가신다는 말입니다. 개역한글이 이 동사를 "권념하사"로 옮긴 것도 같은 뜻입니다. 마음에 두고 돌보신다는 말이니, 잊었다가 다시 떠올리셨다는 오해를 처음부터 막아 주는 번역입니다.
교리문답
WSC 11 · WCF 5.1
관련 구절
GEN.6.5 · GEN.9.15-16 · EXO.2.24 · ISA.54.9 · EPH.5.2 · JER.31.33
출처
tyndale:GEN.8 (CC BY-SA 4.0) · adam-clarke:GEN.8 (Public Domain) · tyndale:MAT.5 (CC BY-SA 4.0) · wcf:5.1 (Public Domain) · wsc:11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