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일 중 7일째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창세기 7장 · 마태복음 4:12-25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GEN.7.16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3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4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5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9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10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3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15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21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24물이 일백오십 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배경

창세기 6장은 판결 하나와 공사 하나로 끝났습니다. 땅에 포악이 가득했고, 하나님은 그것을 끝내기로 하셨습니다.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는 정해진 치수대로 배를 지으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7장은 그 기다림이 끝나는 한 주간입니다. 노아는 육백 세입니다. 여덟 사람이 배에 오릅니다. 노아와 그의 아내, 셈과 함과 야벳, 그리고 세 며느리입니다. 짐승들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수대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레 동안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 이어집니다. 그 뒤에 아래로는 깊음의 샘이 터지고 위로는 하늘의 창이 열립니다. 한꺼번에 열립니다.

이 기록을 처음 받은 사람들도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었습니다. 등 뒤에서 군대 하나가 물에 잠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의 어느 편에 서 있느냐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들은 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풀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 장이 얼마나 천천히 움직이는가 하는 점입니다. 배에 오르는 장면이 거의 같은 말로 두 번 서술되고(7-9절, 13-16절), 홍수에는 날짜가 박혀 있습니다.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열이렛날입니다. 틴데일 주석은 이런 세밀함이 이 기록에 어떤 엄중함을 준다고 봅니다. 교훈 하나를 붙여 놓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에 실린 것들의 목록도 그저 생존 물품이 아닙니다. 정결한 짐승은 더 많이 들어갑니다. 틴데일과 아담 클라크 모두 여기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분이 시내 산보다 앞선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레위기의 전문 용어는 쓰이지 않지만 개념은 이미 있습니다. 남는 짐승은 먹을 것이기도 하고, 노아가 8장 20-21절에서 드릴 제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배는 여덟 달 치 양식만이 아니라 예배까지 실은 배입니다.

그리고 물입니다. 큰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립니다. 창조 둘째 날과 셋째 날에 하나님이 물에 그어 두신 경계가 풀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17절에서 물이 "번성합니다." 1장에서 새와 짐승과 사람이 땅에 가득하도록 번성하라 하실 때 쓰인 바로 그 동사입니다. 틴데일은 이 되풀이를 역설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여덟 절 안에 땅이라는 말이 여덟 번 나옵니다. 사람이 더럽힌 그 영역이 지금 물에 잠기는 그 영역입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은 이런 식으로, 창조가 거꾸로 되감기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예레미야 4:23-26; 아모스 7:4).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물음이 있습니다. 약하게 다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한 세계를 물에 잠기게 하신 일입니다. 아이들도 있었고, 어떤 언약도 어긴 적 없는 짐승들도 있었습니다. 창세기는 이 사실을 부드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따로 아무 설명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딛고 설 자리는 하나님이 밝혀 주신 어떤 해답이 아니라, 그렇게 행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가 하는 일은 이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도 떠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16절은 노아가 문을 걸어 잠갔다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셨다고 끝납니다. 틴데일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주권자이신 심판주께서 안에 있는 이들을 지키신 일과 밖에 있는 이들이 멸망한 일, 그 둘 모두를 친히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클라크는 나머지 반쪽을 덧붙입니다. 노아를 닫아 넣으신 그 손이 나머지를 닫아 두셨습니다. 백이십 년을 기다리셨지만 끝내 오지 않은 회개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 더 보십시오. 1절에서 노아를 의롭다 하신 그 말씀은 6장 8절에서 그가 이미 받은 은혜 뒤에 옵니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결

베드로는 이 장을 하나의 틀로 읽습니다. 여덟 사람이 물을 지나 안전히 건너간 일이 세례에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그 세례는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어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로 구원합니다(베드로전서 3:20-21). 예수님도 노아의 때를 가리키십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아무것도 알지 못하다가, 문이 닫히는 그날을 맞았다고 하십니다(마태복음 24:37-39). 이 틀은 그대로 이어지다가 한 번 뒤집힙니다. 십자가에서 심판의 물은 바깥세상 위로 쏟아지지 않습니다. 아들 위로 쏟아집니다. 그분은 안에 닫혀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밖으로, 어둠 속으로 닫혀 나가셨습니다. 다른 모든 이에게 문이 열려 있도록 말입니다.

오늘의 한 가지

물이 들이치지 못하게 나를 지켜 주리라고 은근히 믿고 있는 그 한 가지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이 손해 볼까 봐 미뤄 온 옳은 일을 이번 주에 하십시오.

노아는 백이십 년 동안 배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실제로 안전했던 이유에 대해 성경이 주는 문장은 하나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셨다는 것입니다. 문을 닫은 것은 노아가 아니었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우리 대부분도 물을 막아 줄 장치를 하나씩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손대지 않기로 한 통장의 잔고, 나 없으면 안 돌아간다는 자리, 꼬박꼬박 챙기는 건강 관리, 잘 풀리고 있는 자녀. 이것들이 잘못은 아닙니다. 노아의 망치도 선물이었습니다. 다만 내가 실제로 의지하고 있는 것이 그것일 때,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시험해 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것을 잃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하지 않으려 하겠습니까. 이번 주에 그 하나를 찾아보십시오. 신고서에 적어야 할 정직한 숫자, 해야 할 사과, 보내야 할 돈, 상사와 나누어야 할 대화. 그 첫 부분만이라도 하십시오.

기도

주님, 문을 닫으신 분은 주님이셨고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삶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제 삶을 안전하게 만드는 일에 더 많은 힘을 써 왔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던 심판이 제가 아니라 주님의 아들에게 떨어졌음을 감사합니다. 성실히 짓되 온전히 주님 안에서 쉬게 하소서. 아멘.

12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 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보조 본문에 관하여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갈릴리로 물러가십니다. 유대 지도층이 낮추어 보던 지역, 이방 사람이 많이 살던 지역입니다. 그리고 마태는 이사야를 인용합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앉은 백성에게 빛이 비친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7장을 읽은 뒤에 만나면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표현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어부들을 부르십니다. 틴데일 주석은 선지서에서 고기를 낚는 말이 건짐만이 아니라 심판도 담고 있다는 점을 짚습니다(에스겔 29:4-5; 아모스 4:2). 제자들은 그 둘을 함께 건네받습니다.

원어 묵상

와이르부 함마임 (וַיִּרְבּוּ הַמַּיִם) — 물이 번성하여

우리말 성경들은 대개 "물이 불어나" 또는 "물이 많아져"로 옮기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번역입니다. 다만 그 밑에 있는 동사는 창세기 1장 22절과 28절에서 생물들이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실 때 쓰인 바로 그 동사입니다. 틴데일 주석은 이 되풀이를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한 복으로 하신 말씀이, 이제 그것들을 쓸어 가는 물에 대해 쓰이고 있습니다. 이 장은 자연재해를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가 거꾸로 선포되는 장면을 그립니다.

교리문답

WSC 11 · WSC 84 · WCF 5.1

관련 구절

HEB.11.7 · 1PE.3.20-21 · MAT.24.37-39 · JER.4.23-26 · AMO.7.4 · GEN.8.20-21

출처

tyndale:GEN.7 (CC BY-SA 4.0) · adam-clarke:GEN.7 (Public Domain) · tyndale:MAT.4 (CC BY-SA 4.0) · wcf:5.1 (Public Domain) · wsc:11 (Public Domain) · wsc:84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