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일 중 2일째
동산과 명령과 안식
창세기 2장 · 마태복음 1:18-25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GEN.2.3
창세기 2장
배경
어제는 시야가 끝까지 넓었습니다. 별과 바다와 온갖 생물의 무리가 한눈에 담겼습니다. 오늘은 시선이 땅바닥까지 내려옵니다. 한 사람, 한 동산, 한 나무, 한 명령, 그리고 한 여자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죄도 없고 죽음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3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우리는 그것을 2장에 미리 얹어 읽으려는 마음을 눌러야 합니다.
이 글을 처음 받은 사람들은 사백 년을 애굽에서 보냈고 이제 가나안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그들은 일곱째 날이 있는 한 주간을 받게 되고, 제사장이 섬기는 성소를 받게 되고, 금하는 조항이 들어 있는 율법을 받게 됩니다. 그 셋이 모두 여기 동산에 먼저 나옵니다. 그것을 필요로 할 나라가 생기기도 전에 말입니다.
본문 풀이
처음 세 절은 1장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합니다. 여섯 날 동안 하나님은 나누셨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고, 낮과 밤을 나누고, 물과 뭍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또 하나의 나눔이 옵니다. 이번에는 평범한 것과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그날을 구별하십니다. 클라크는 '복 주다'로 옮긴 히브리어에 어떤 것을 좋게 말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날의 이름은 그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리키는 동사 그대로입니다. 곧 쉬셨다는 말입니다. 틴데일은 빠진 것을 짚습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후렴이 일곱째 날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틴데일은 그 빈자리를, 지으신 것과 끝나지 않는 사귐을 나누시려는 창조주의 뜻으로 읽습니다.
이 날들의 길이에 대해서 PCA는 일부러 하나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를 달력의 하루로 읽는 견해, 긴 시대로 읽는 견해, 문학적 틀로 읽는 견해, 유비로 읽는 견해를 신실한 목사들이 저마다 붙들고 있습니다. 연구 위원회 자체도 신앙고백서의 "엿새 동안에"라는 표현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두고 갈렸습니다. 다만 위원회가 정리한 견해들이 한 가지에서는 함께 섭니다. 창조의 날들은 실제로 순서가 있는 과정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순간적 창조와는 다릅니다. 다투는 지점은 그 순서가 반드시 스물네 시간짜리 엿새여야 하느냐입니다. 그러니 일곱째 날은 실제로 순서대로 일어난 어떤 일의 끝입니다.
2장 4절에서 새로운 표제가 붙습니다. 개역한글은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로 옮겼습니다. 창세기 전체에서 새 단락을 열 때마다 되풀이되는 히브리어 톨레도트 문구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앞의 이야기 옆에 어설프게 덧붙인 또 다른 창조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일을 땅의 눈높이에서 다시 들려주는 것입니다. 우주의 짜임새보다 하나님이 어떻게 채워 주시는지에 눈길이 머뭅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도 그에 맞춰 엘로힘에서 언약의 이름인 여호와 엘로힘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집니다. 1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대로 됩니다. 여기서는 빚으시고, 불어넣으시고, 심으시고, 데려가시고, 이끌어 오십니다. 사람은 아다마, 곧 땅의 흙으로 지어집니다. 아담이라는 이름과 짝을 이루는 말놀이이고, 본문은 3장에 가서 그 값을 치르게 합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은 어떤 짐승에게도 하지 않으신 일입니다.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된 시간이라면, 동산은 거룩하게 구별된 공간입니다. 틴데일은 "다스리며 지키게"라는 표현이 뒤에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다시 쓰인다는 점을 짚습니다. 일은 벌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잘못되기 전부터 여기 있습니다.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나무에서 먹을 자유가 있고, 하나만 금하십니다. 그 금지의 문장 형식은 훗날의 계명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처음으로 "좋지 못하니"가 나옵니다. 이어서 기록된 사람의 첫 말은, 하나님이 데려오신 여자를 노래하는 시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결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식할 때가 아직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2장은 그것이 왜 또 하나의 요구가 아니라 좋은 소식인지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쉬신 것은 일이 다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럴 만한 일을 하나라도 하기 전에 그날에 복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주어진 안식은 벌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그것은 우리 짐 위에 새로운 수고를 얹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을 끝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안식은 우리 수고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분이 이루신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굽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하나님이, 훗날 그 흙을 친히 입으셨습니다.
오늘의 한 가지
다음 쉬는 날이 오기 전에, 그날 일부러 손대지 않고 남겨 둘 일 한 가지를 정하고, 그렇게 했을 때 무엇이 두려운지를 적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끝난 일 위에서 쉬셨지만, 우리는 좀처럼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일하기 전에 일곱째 날에 복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신앙고백서는 이 날을 엄중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영구적인 계명이며 온종일 거룩히 쉬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 안식은 성과로 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끝난 일에 근거합니다. 규칙집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무엇을 의지하는지 확인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정하십시오. 월요일에 보내도 되는 답장. 반쯤 칠하다 만 방. 밤 아홉 시에 자꾸 다시 여는 문서. 닫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서 못 닫는 그 파일 말입니다. 두려움도 적으십시오. 게으르다고 여길 것이다, 누군가 나를 앞지를 것이다, 다 무너질 것이다. 그러고도 그냥 남겨 두십시오. 그리고 월요일에 보십시오. 내가 붙들지 않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주님은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을 거룩하다 하셨습니다. 아무도 그 한 시간조차 벌어 놓지 못했을 때에 그리하셨습니다. 저는 쉰다고 풀리지 않는 방식으로 지쳐 있습니다. 주님이 멈추셨기에 저도 멈추게 하시고, 주님이 일을 맡기셨기에 일하게 하시며, 주님이 이루신 것으로 충분함을 믿게 하소서. 아멘.
보조 본문 — 마태복음 1:18-25
보조 본문에 관하여
마태의 족보가 이제 한 가정으로 좁혀집니다. 당시 약혼은 법적인 구속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라 불린 요셉은 실제로 갈림길에 섰습니다. 율법은 드러내어 처리하는 길을 허락했지만, 그는 조용한 길을 택했습니다. 순종을 어기면서가 아니라 순종 안에서 베푼 긍휼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아기에게 주는 이름은 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고, 마태는 거기에 이름 하나를 더 붙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이름입니다. 손수 빚으신 사람과 동산을 거니시던 하나님은 멀찍이 계시지 않습니다.
원어 묵상
샤바트 (שבת) — 쉬셨다, 그래서 안식일
클라크는 일곱째 날의 이름이 그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리키는 동사 그대로임을 짚습니다. 곧 쉬셨다는 말입니다. '복을 주다'에 해당하는 동사(바라크)에는 어떤 것을 좋게 말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날을 좋게 말씀하시고 따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순서를 눈여겨보십시오. 이날은 창세기에서 이미 복을 받고 거룩하게 됩니다. 그것을 지킬 이스라엘이 생기기 훨씬 전이고, 출애굽기 20장이 여기에 계명을 붙이기 훨씬 전입니다.
교리문답
WSC 10 · WSC 12 · WCF 7.2 · WCF 21.7
관련 구절
EXO.20.8-11 · HEB.4.9-11 · MAT.12.1-8 · COL.2.16-17 · EPH.5.31-32
출처
tyndale:GEN.2 (CC BY-SA 4.0) · tyndale:MAT.1 (CC BY-SA 4.0) · adam-clarke:GEN.2 (Public Domain) · pca:creation-report-2000 (Public Domain) · wcf:7.2 (Public Domain) · wcf:21.7 (Public Domain) · wsc:10 (Public Domain) · wsc:12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