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일 중 4일째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창세기 4장 · 마태복음 2:13-23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GEN.4.7

1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10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16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17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18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배경

에덴은 이미 뒤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 밖에서, 3장이 정해 놓은 조건 아래 살아갑니다. 해산의 고통, 가시덤불을 내는 땅, 막혀 버린 돌아갈 길입니다.

4장은 성경에 기록된 첫 출산으로 시작합니다. 하와는 맏아들의 이름을 가인이라 짓고, 그를 주신 분이 여호와시라고 말합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납니다. 아벨은 양을 치고 가인은 땅을 갈았습니다. 두 사람 다 제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아직 제사장도 없고 성막도 없으며 기록된 율법도 없습니다. 이 시점의 예배란 한 사람이 무엇을 가져오는가, 그리고 어떻게 가져오는가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첫 죽음이 일어납니다. 3장 19절이 예고한, 흙으로 서서히 돌아가는 그 죽음이 아닙니다. 살인입니다. 그리고 죽인 사람은 형입니다.

본문 풀이

3장과 나란히 놓고 읽으면 이 이야기의 짜임이 불편할 만큼 낯익습니다. 경고가 주어집니다. 무시됩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이미 답을 아시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네가 어디 있느냐"에 짝을 이룹니다. 사람은 얼버무립니다. 땅과 관련된 선고가 내려지고, 동쪽으로 쫓겨납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하나님은 죄를 지은 그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 입히셨듯이, 여기서는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스라엘은 자기 삶의 모양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경고, 실패, 땅에서의 추방, 하나님의 얼굴을 떠남. 그리고 그 사이를 이상하게 관통하는 자비까지도 말입니다.

왜 한 제물은 받아들여지고 다른 제물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창세기는 그것을 곧바로 말해 주지 않습니다. 정직한 독자라면 그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본문이 내주는 단서는 하나입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가져왔고, 아벨은 첫 새끼와 기름을, 곧 처음 것과 가장 좋은 것을 가져왔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그 차이를 믿음에서 찾고, 신앙고백서도 같은 취지로 이 본문을 인용합니다. 믿음으로 깨끗하게 된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6장 7항). 여기까지는 분명합니다. 분명하지 않은 것은 그 방식입니다. 틴데일 주석은 문제를 가인의 마음가짐으로 읽으며, 곡식 제물 자체에는 잘못이 없었다고 봅니다. 아담 클라크는 케니콧을 따라 아벨이 피 흘리는 제사를 더했다고 보고, 7절의 말씀을 문 앞에 마련된 속죄제를 가인에게 내미시는 것으로 읽습니다. 다만 클라크는 매기가 여기에 반대한 것도 함께 적어 둡니다. 케니콧이 히브리어에서 끌어낸 그 구분에는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석은 서로 갈리고, 클라크 자신의 주석이 그 반박까지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다툼 없이 못 박아 두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인은 내쫓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을 거시고, 경고하시고, 아직 받아들여질 길이 남아 있다고 일러 주십니다.

가인은 그 길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 장은 거절이 무엇으로 자라나는지를 따라갑니다. "아우"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옵니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죽임인지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섯 세대 뒤 라멕은 두 아내를 둡니다. 2장 24절을 거스릅니다. 게다가 사람을 죽인 일을 노래로 만들어, 하나님이 일곱 배의 보호를 약속하신 자리에서 일흔일곱 배의 보복을 장담합니다. 그러는 동안 문명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성읍이 서고, 가축을 치고, 악기를 다루고, 쇠를 다룹니다. 창세기는 이것들을 정죄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면서도, 이것들이 무엇을 해결해 준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장은 전혀 다른 자리에서 끝납니다. 셋째 아들이 태어나고, 연약한 인간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손자 에노스가 태어나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결

아벨의 피가 땅에서 "호소한다"고 합니다. 주석가들은 이것을 법정의 증언으로 읽습니다. 자기를 쏟아 낸 자를 고발하는 증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피는 답을 요구하지만, 창세기가 내놓는 것은 억제뿐입니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보복만 막아 세우는 표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4절은 바로 이 장면을 받아, 그리스도의 뿌린 피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더 큰 소리로 고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나은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서 마침내 피는 죄인을 고발하지 않고 죄인을 위하여 말합니다. 그리고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신 물음에는, 자기 목숨을 내주며 우리를 지킨 한 형제가 대답이 됩니다.

오늘의 한 가지

오늘 누군가의 좋은 소식에 얼굴이 굳어지거든, 그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께 부르며 그에게 덜이 아니라 더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7절은 가인을 아주 이른 자리에서 붙잡습니다. 얼굴이 떨어졌을 뿐,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들판까지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떨어진 얼굴에서 개입하십니다. 이것이 평범한 하루에 닿는 지점입니다. 동료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 명절 식탁에서 듣는 형제자매의 근황, 나보다 일이 잘 풀려 가는 친구. 무언가 툭 내려앉고, 몇 초 만에 그 사람이 그럴 만하지 않은 이유가 머릿속에 정리됩니다. 여기서 제삼의 길은 기쁜 척하는 것도 아니고, 이를 악물고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 보는 것도 아닙니다. 가인을 치지 않으시고 물음을 건네신 하나님 앞에 그 굳어진 얼굴을 그대로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더 주시라고 소리 내어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가인이 손을 들기 전에 그 얼굴을 보셨고, 그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제 얼굴도 보아 주십시오. 제 문 앞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시기든 원망이든 혼자 곱씹는 억울함이든, 저를 그것과 단둘이 두지 마십시오. 처음 것과 가장 좋은 것을 주님께 가져가게 하시고, 제 형제를 지키게 하소서. 아멘.

13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0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보조 본문에 관하여

마태복음의 성탄 이야기에는 주검이 있습니다. 자기 가족을 죽인 일까지 요세푸스가 기록할 만큼 악명 높던 헤롯이 베들레헴의 사내아이들을 죽입니다. 마태는 예레미야를 끌어옵니다. 라헬이 울며 위로받기를 거절합니다. 창세기 4장은 폭력을 통과해 살아남은 한 줄로 끝났습니다. "아벨 대신에 다른 씨"입니다. 마태복음 2장도 같은 일을 합니다. 밤중에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지는 아기입니다. 약속은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피난민으로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의 어머니들은 그것으로 위로받지 못합니다.

원어 묵상

로베츠 (רֹבֵץ) — 웅크리다, 엎드리다

틴데일 주석은 이 낱말을 가인에게 덮치려고 도사린 짐승의 그림으로 읽습니다. 문 앞의 짐승 같은 죄입니다. 아담 클라크는 같은 낱말이 네발짐승이 엎드리는 모습에도 쓰인다는 점을 짚고, 그것을 근거로 이 구절을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속죄제로, 곧 위협이 아니라 해결책을 내미시는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읽기는 정반대 방향으로 당기고, 주석가들은 합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뒤따르는 구절만은 어느 쪽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가인은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본문은 다스리는 것과 다스림을 당하는 것 사이에 중립 지대를 두지 않습니다.

교리문답

WSC 14 · WSC 69 · WCF 16.7

관련 구절

HEB.11.4 · 1JN.3.12 · HEB.12.24 · GEN.3.9-13 · GEN.9.6 · MAT.23.35

출처

tyndale:GEN.4 (CC BY-SA 4.0) · tyndale:MAT.2 (CC BY-SA 4.0) · adam-clarke:GEN.4 (Public Domain) · wcf:16.7 (Public Domain) · wsc:14 (Public Domain) · wsc:69 (Public Domain)